한국사 : 남북국 시대의 사회, 문화

2024. 2. 15. 08:00역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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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2.11 - [역사를 잊지 않은 민족] - 한국사 : 남북국 시대의 정치

 

한국사 : 남북국 시대의 정치

안녕하세요. 모든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올라운드 뷰어, 올라뷰입니다. 2024.02.11 - [역사를 잊지 않은 민족] - 한국사 : 삼국 시대의 문화 남북국 시대는 신라의 삼국통일부터 발해 멸망 때까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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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2.15 - [역사를 잊지 않은 민족] - 한국사 : 남북국 시대의 경제

 

 

 

<사회>

통일 이후, 신라 사회의 모습은 고구려·백제 지배층에게 신라의 관등을 부여하였습니다.

고구려계 귀족은 6두품, 백제계 귀족은 5두품으로 대우하였습니다.

그리고 수도의 치안과 방위를 맡는 9서당에 고구려, 백제, 말갈인 등이 편성되었습니다.

 

*진골 귀족은 정치적, 경제적 특권을 향유하였고 진골 귀족 내부의 경쟁이 심화되었으며 경쟁에서 패배한 진골 귀족은 6두품 등으로 강등되었습니다.

*6두품은 학문적 식견과 실무 능력으로 중대에 전제 왕권을 지지하였고 신분적 한계로 출세의 벽이 있었으며 당의 빈공과에 응시하기도 하였습니다.

*통일 이후 3~1두품은 평민으로 평준화되었습니다.

 

진골 귀족들의 왕위 쟁탈전으로 혈연적 유대감이 약해졌으며 중앙 정부의 지방 통제력이 약화되었습니다.

이렇듯, 진골 귀족 간의 다툼으로 지방 세력이 성장하였고 무장 조직이 결성되었고 중앙 정부에 조세 납부를 거부하였습니다.

 

신라 하대 농민들은 빈번한 자연 재해로 생활고에 시달렸으며 귀족들이 대토지를 소유함으로써 토지를 잃은 농민들이 소작농, 노비 등으로 전락하였습니다. 지배층의 조세 회피로 농민의 조세 부담이 증가하였습니다.

 

농민에게 강압적으로 조세를 징수함으로써 농민 봉기가 일어났으며 대표적인 봉기로는 원종과 애노의 난, 양길, 기훤 등이 있습니다.

 

발해의 사회는 왕족인 대씨, 귀족인 고씨, 양씨 등 대다수의 고구려 유민이 지배층으로 구성되었으며, 피지배층은 대다수는 말갈인으로 부락 단위로 자치적 생활을 영위하였습니다. 지식인층은 당의 문화 수용, 당에 유학생을 파견, 빈공과에서 신라인과 경쟁하였습니다. 피지배층은 고구려, 말갈 사회의 전통적인 생활 모습을 유지하였습니다.

 

<문화>

유학 교육 기관이 설치되었습니다.

*신문왕(682) : 국학이라는 유학 교육 기관 설립

*경덕왕(759) : 국학을 태학감으로 고치고 박사와 조교를 두어 논어와 효경을 가르침

*혜공왕(776) : 다시 국학으로 개칭

*원성왕(788) : 국학에 독서삼품과라는 관리 채용 시험 제도를 마련함

 

대표적인 유학자로는 김대문, 강수, 설총, 최치원이 있습니다.

6두품 출신이 대다수로 사회 모순을 개혁하는 사상적 기반이 되었습니다.

 

불교의 사상이 발달하였습니다.

*원측 : 당나라 현장에게서 유식 불교를 배웠고 법상종 성립에 기여하였음

*의상 : 진골 출신 승려로 신라의 화엄 사상을 정립하였고 화엄일승법계도를 작성하고 부석사를 건립하였음

*원효 : 화쟁 사상, 일심 사상, 통불교 사상, 정토 신앙으로 대승기신론소 및 금강상매경론을 저술하였고 아미타 신앙을 보급하였음

  *아미타 신앙 : '나무아미타불'의 여섯 자를 정성스런 마음으로 외우면 누구라도 극락에 갈 수 있다고 주장
*혜초 : 인도 및 중앙아시아를 순례하였고 왕오천축국전을 저술하였음

<원효의 불교 대중화>
원효는 파계하여 설총을 낳은 후로는 속인의 옷으로 바꾸어 입고, 스스로 소성거사라 하였다. ... 화엄경의 구절 중에 "모든 것에 걸림이 없어야 한 길에서 나고 죽음을 벗어나노라."라는 노래를 지어 무애가라 부르고 세상에 퍼뜨렸다. 일찍이 이것을 가지고 많은 촌락에서 노래하고 춤추며 교화하고 읊으면서 돌아다녔으므로, 가난한 사람, 원숭이 같은 무리들로 하여금 모두 부처의 이름을 알게 하고, '니무아미타불'이라는 합장의 미덕을 알았으니, 원효의 교화가 크도다. <삼국유사>

신라 하대의 선종 승려 도선이 중국으로부터 풍수지리설을 도입하였습니다.

 

또한, 기상이변 등을 기록하고 수학적 지식을 응용하여 탑을 세우고 무구정광대다라니경에서 볼 수 있듯이 목판 인쇄 및 제지술이 발달하였습니다.

*천문관측 : <삼국사기> 일·월식, 지진, 혜성 출현, 기상이변 등 기록

*수학 : 석굴암, 석가탑, 다보탑 등의 균형 잡힌 비례와 구성 등에 수학적 지식 응용

*목판 인쇄 및 제지술 : (무구정광대다라니경) 불국사 3층 석탑에서 발견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 인쇄물, 보존성이 우수한 닥나무 종이 사용

 

고분 양식의 변화와 건축과 탑도 있는데요.

불교의 영향으로 화장이 유행하였고 굴식 돌방무덤, 성덕 대왕릉, 김유신 묘, 괘릉 등 고분이 있었습니다.

 

균형미가 뛰어난 불상을 제작하기도 하였는데요.

*불국사 : 불국토의 이상 표현, 조화·균형 감각

*석굴암 : 인공 석굴 축조, 아름다운 비례와 균형미

*안압지 : 정원 조경술의 발달, 귀족들의 화려한 생활상과 관련된 유물 발굴

 

통일 신라 초기에는 이중 기단 위에 3층 석탐, 감은사지 3층 석탑, 불국사 3층 석탑이 있으며 통일 신라 말기에는 3층 석탑 양식의 약화, 탑신에 불상을 새기거나, 다양한 층수의 석탑이 등장, 진전사지 3층 석탑, 실상사 3층 석탑이 있습니다.

 

불상은 중대에는 균형미, 뛰어난 조각 기법으로 대표적 불상은 석굴안 본존불, 석굴암 보살상 등이 있습니다.

하대에는 개성적이고 인간적인 모습으로 대표적 불상은 도피안사의 비비로자나불 865가 있습니다.

석조물로는 법주사 쌍사자석등, 불국사 석등 등이 있으며 범종은 상원사 종, 성덕 대왕 신종이 있으며 이것은 국왕 권위를 과시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발해의 문화로는 귀족 자제에게 유교 경전 교육을 목적으로 주자감을 설치하였고 유교적인 이름 6부명으로 명명하였고 유학생 중에서 빈공과에 급제하는 인재들이 배출되었습니다.

고구려 불교를 계승하고 왕실·귀족 중심이었습니다.

고구려의 영향으로 굴식 돌방무덤이 많았으며 대표적으로 정혜공주 묘와 당나라 양식의 벽돌 무덤인 정효공주 묘가 유명합니다.

이불 병좌상 등 불상에서 고구려 흔적이 발견되었으며 가볍고 광택이 있는 자기 공예도 다양하였습니다.

 

다음 포스팅에서는 고려시대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