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 고려 시대의 문화 2

2024. 2. 23. 05:25ㆍ역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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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 포스팅에서는 고려 시대의 불교 및 유학 등의 발달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2024.02.22 - [역사를 잊지 않은 민족] - 한국사 : 고려 시대의 문화 1

 

한국사 : 고려 시대의 문화 1

안녕하세요. 모든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올라운드 뷰어, 올라뷰입니다. 2024.02.22 - [역사를 잊지 않은 민족] - 한국사 : 고려 시대의 사회 한국사 : 고려 시대의 사회 안녕하세요. 모든 것에 대해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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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포스팅에서는 도교, 풍수지리설, 과학기술의 발달 등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고려시대에는 도교(道敎)와 풍수지리설이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도교]

도교는 중국에서 발생한 종교로, 유교 및 불교와 함께 성행하였습니다.

왕실과 귀족층을 중심으로 도교가 유행했으며, 특히 왕실의 힘과 정통성을 강화하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도교는 영원한 존재인 도(道)에 대한 깨달음을 통해 인간의 삶을 완성하고자 하는 사상을 중시하였고 이는 천황(天皇)에게는 천의 사도로서의 지위를 부여하고, 그들의 권위를 강화하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신선 사상·음양오행 사상과 연계되어 불로장생·현세구복을 추구하였습니다.

종교 활동으로는 도사가 주관해 왕실과 국가의 번영을 기원하는 초제가 있었으며, 오악, 명산, 대천, 부처님, 하늘에 대한 제사와 도교의 초제, 불교 행사가 합쳐진 행사인 팔관회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일관된 체계의 미비로 교단 성립은 실패하였습니다.

 

[풍수지리설]

풍수지리설은 지리적 요소와 자연 현상이 사람들의 운명과 사회적 상황에 영향을 미친다는 이론입니다. 고려시대에는 풍수지리설이 국가 건설, 왕실의 거주지 선정, 농경 및 도시 계획 등 다양한 분야에서 중요한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풍수지리설에 따라 적절한 지형과 배치는 국가와 개인의 번영과 안정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따라서 풍수지리설은 국가 발전과 안전을 증진하기 위해 실용되었으며, 건축 및 도시 계획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도참사상과 혼합되어 유행하였고 땅을 하나의 유기체로 파악하였습니다. 태조는 훈요 10조에서 풍수지리를 강조하였고 과거 시험 중 '지리업'이라는 풍수지리 관련 과목을 채택하였습니다.

 

[과학기술]

천문학

고대 과학기술의 전통을 계승하고 중국과 이슬람의 과학기술을 수용하면서 천문 관측에 대한 관심이 커졌습니다. 천문과 관련된 일은 사천대(서운관)에서 관장하였습니다. 초기에는 당나라의 선명력, 후기에는 원나라의 수시력인 역법을 사용하였습니다. 고려시대 천문학자들은 별자리, 일식, 월식 등의 현상을 관측하고 기록하면서 천체의 운동에 대한 이해를 쌓았습니다. 이러한 관측과 연구를 통해 고려시대 천문학자들은 태양, 달, 별들의 운행을 예측하였습니다. 

 

의학

학교에 의학박사를 두고 과거에도 의과를 시행하였습니다. 고려 초까지는 궁중 의술 중심이었으나, 제위보를 설치하여 서민 치료를 담당하는 등 평민을 위한 의술이 발달하였습니다. 현재 전해지는 가장 오래된 의서로 「향약구급방」(1236)이 있습니다.

 

인쇄술

13세기에 고려의 소설가 이정우가 활동한 시기에 금속활자 인쇄술이 발명되었습니다. 이 기술은 글씨를 조각한 활자를 사용하여 책을 복제하는 것으로, 이전의 수작업으로 인쇄되는 것보다 빠르고 정확했습니다. 한 권의 책만을 인쇄할 수 있으며 일일히 글자를 파서 새기는 목판 인쇄술이 발달하였으며 나아가 활판 인쇄로 발전하였습니다. 

· 목판 인쇄술 : 재조대장경(팔만대장경)

· 금속 활자 인쇄술 : 고금상정예문, 직지심체요절(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금속 활자본/2001년 세계 기록 유산 등록) 

 

[예술]

건축

주로 불교 사찰과 궁궐을 중심으로 발전했습니다. 고려 전기에는 주심포 양식이 유행하였으며 안동 봉정사 극락전,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예산 수덕사 대웅전 등이 있습니다. 고려 후기에는 다포식 건물이 유행하였고 사리원의 성불사 응진전이 대표적입니다.

 * 주심포 양식 : 기둥 위에만 짜여 있는 공포

 * 다포 양식 :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짜여 있는 공포

 

조각

 석탑

 신라 양식을 일부 계승하였고 다각 다층탑이 많으며, 석탑의 몸체를 받치는 받침이 보편화되었습니다. 불일사 5층 석탑, 무량사 5층 석탑, 월정사 8각 9층 석탑, 경천사 10층 석탑이 있습니다.

 

 승탑

 신라 후기의 형태를 계승하는 팔각 원당형이 유행하였고 고달사지 승탑과 지광국사 현묘탑 등이 있습니다.

 

 불상

 지방색이 강하며 개성적, 지방 호족들의 자유분방한 성격이 반영되었습니다. 광주 춘궁리 철불, 논산 관촉사 은진 미륵 보살 입상, 부석사 소조 아미타여래좌상 등이 있습니다.

 

 청자

 귀족들의 생활 도구, 불교 의식에 사용하는 불구 중심이였습니다. 신라 토기의 전통을 계승하였고 상감 기법 등장하였습니다. 자기소를 중심으로 생산하였고 강진과 부안이 유명합니다.

 

 금속 공예

 불교 도구 중심으로 발전하였고 청동기 표면을 파낸 뒤 은을 채워 넣어 무늬를 장식하는 기술이 발전하였고 청동 향로와 청동 정병 등이 있습니다.

 

 나전 칠기 공예

 옻칠한 바탕에 자개를 붙이는 방식으로 불경을 넣은 경함, 화장품갑, 문방구 등의 제작에 이용되었습니다.

 

음악

 아악

 송나라에서 수입한 대성악이 궁중 음악으로 발전하였으며 주로 제사 때 사용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문묘 제례악이 있습니다.

 

 당악

 당나라와 송나라에서 수입된 음악으로 고려 음악 발전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향악

 당악이 점차 향악화되었으며 동동, 한림별곡, 대동강 등이 유명합니다.

 

 

다음 포스팅에서는 조선 전기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