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 고려 시대의 사회

2024. 2. 22. 14:15ㆍ역사학

반응형

안녕하세요.

모든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올라운드 뷰어, 올라뷰입니다.

 

2024.02.21 - [역사를 잊지 않은 민족] - 한국사 : 고려 시대의 경제

 

한국사 : 고려 시대의 경제

안녕하세요. 모든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올라운드 뷰어, 올라뷰입니다. 2024.02.16 - [역사를 잊지 않은 민족] - 한국사 : 고려 시대의 정치 한국사 : 고려 시대의 정치 안녕하세요. 모든 것에 대해 이

hola-view.tistory.com

 

고려시대는 신분 제도와 귀족 지배가 중요한 특징이었습니다.

고려시대 사회의 귀족층은 고려 왕실과 고려 건국 이후 그 가문으로부터 나온 명문가들로 구성되었습니다.

이들은 주로 고려의 정치, 군사, 문화 생활에 참여했으며 지배계층으로서의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양반층은 귀족층 이외의 지배층으로, 성과 실력에 따라 지위가 결정되었습니다.

 

신분 제도

고려시대의 사회는 기본적으로 귀족층, 양반층, 평민층, 노비 등으로 신분 제도에 의해 구분되었습니다. 

  · 귀족층 : 왕실과 권력의 중심에 있는 가문을 말합니다. 이들은 세습적인 특권과 지위를 가졌으며, 정치, 군사, 문화 등에서 주요한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 양반층 : 평민 출신으로서 양자(향리)로 발탁된 사람들을 말합니다. 고려시대의 관료계급을 이루었으며, 문과, 무과 시험에 의해 발탁되었습니다.

  · 평민층 : 농민과 소상공인 등을 포함하는 일반 시민들을 말합니다. 이들은 세금과 노동력을 제공하면서 사회의 기초를 이루었습니다.

  · 노비 : 노비는 주로 전쟁에서 사로잡혔거나, 채취, 강제 노동을 통해 생산된 인원으로, 주인의 소유물로 취급되었습니다. 고려시대에는 노비 제도가 존재했지만, 점차 희석되고 조선 시대에는 사라졌습니다.

신라의 골품 제도에 비해 지배층의 구성이 다양해졌습니다.

지배층

· 귀족 : 왕족을 비롯하여 5품 이상의 고위 관료들이며 음서와 공음전의 혜택을 받는 등 정치·경제·사회적 특권을 향유하고 문신 위주였으며 무신은 일부만 포함하였습니다.

· 중류층 : 잡류, 남반, 역리 등이 있으며 행정 실무를 담당합니다.

피지배층

· 양인 : 농업에 종사하는 농민층이 대다수이며 백정(白丁)으로 호칭하였습니다. 국가에 대해 조세·공납·요역의 부담을 지았거 상인, 수공업자는 양인에 해당되나 농민보다 천시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향·부곡·소 등 특수 행정 구역에 사는 주민은 양인보다 하급 신분으로 취급하였습니다.

· 천민 : 공노비, 사노비가 있으며 재산처럼 매매, 상속, 양여의 대상이였습니다. 부모 중 한쪽이라도 노비인 경우 그 자식도 노비가 되었고 노비를 함부로 죽이는 것은 금지되었습니다.

 

백성의 생활 모습

일상 의례와 공동 노동을 통해 공동체 의식이 함양되어 있었습니다.

불교적 색채를 띤 군·현 단위의 대규모 지역 공동체인 향도 조직이 있었으며 인력을 동원하여 불상, 석탑, 사찰 등을 축조하였습니다.

12세기 이후 신앙적인 향도에서 마을 공동체 생활을 주도하는 농민 조직으로 발전하였습니다.

그리고 귀족들의 토지 겸병 억제, 농번기에 농민의 잡역 동원 금지, 자연 재해 시 부세 부담 감면, 이자율을 법률로 정하여 고리대를 억제하는 등 농민 생활 안정을 위한 농민 보호 제도가 있었습니다. 또한 빈민구제 시설도 설치되었는데요.

· 의창 : 평시에 미곡을 저장하였다가 흉년에 빈민 구제

· 제위보 : 빈민과 여행자 구호를 위해 설치

· 상평창 : 물가 조절 기관으로 개경, 서경, 12목에 설치

· 동서 대비원 : 가난한 환자의 진료를 담당하는 의료 구제 기관

· 혜민국 : 전염병을 막고 무료롤 약을 나눠 주는 의료 구제 기관

또한, 당률(당나라의 형법)을 시행하였으나 대부분 관습법을 중시하였고 지방관이 재량권 행사, 5형 시행, 불효죄 및 반역죄는 엄중 처벌하였습니다. 장례와 제사 때 불교 및 도교식으로 진행되었고 연등회와 팔관회가 국가적 행사로 중시되었습니다. 명절(정월 초하루, 단오, 추석 등)과 놀이(그네뛰기, 씨름 등)

혼인 초에는 남자가 처가에서 생활하였고 왕실과 일부 귀족 외에는 일부일처제가 일반적이었습니다. 근친혼과 동성혼이 유행하였고 대부분 같은 신분끼리 혼인하였습니다. 그리고 재산 상속에서 남녀가 동등한 권리를 가졌고 아들이 없을 경우 양자를 들이지 않고 딸이 제사를 진행하였습니다. 남녀 구별 없이 태어난 순서에 따라 족보에 기재되었으며 사회적으로 과부의 재혼에 대해 자유롭고 그 소생도 사회적 차별이 없었습니다.

 

고려 후기 사회 변화

무신 집권기

무신 집권 후 하층민에서 권력자를 배출하였습니다. 무신들의 권력 다툼으로 지배 체제가 붕괴되었으며 대농장 확대로 백성 수탈이 강화되었습니다. 무신 정권의 영향으로 사병을 유지하기 위한 무신 정권의 농민 수탈이 강화되었고 하층민이 집단 저항을 시도하였습니다. 최충헌의 정권 안정으로 항쟁의 기세가 둔화되었습니다. 신분 해방과 삼국의 부흥 운동으로 발전하였습니다.

대표적 봉기 내용
조위총의 난 무인 집권 반대 운동에 농민이 가세함
공주 명학소의 난 망이·망소이가 천민들을 이끌고 신분 해방 운동을 벌임
효심·김사미의 난 초전과 운문 등지에서 신라 부흥을 외치며 봉기함
만적의 난 최충헌의 사노비인 만적의 주도로 일어난 신분 해방 운동임
이비·패좌의 난 경주를 중심으로 신라 부흥 운동을 전개함
최광수의 난 고구려 부흥 운동의 성격
담양 이연년 형제의 난 백제 부흥 운동의 성격

 

 

원 간섭기

친원 세력이 권문세족으로 성장하였고 변발, 몽골 복장, 몽골어 등 몽고풍이 궁중과 지배층을 중심으로 유행하였습니다.

반대로 몽골에서는 고려의 의복, 그릇, 음식 등의 풍습이 유행하였습니다.

결혼도감을 통하여 원라라로 공녀를 공출하고 조혼(어린 나이에 결혼하는 것)이 유행하였습니다.

원의 간섭으로 인해 국방력이 약화되자 왜구가 자주 침입하여 사회적 불안을 야기시키기도 하였으며 해결 과정에서 신흥 무인 세력이 성장하였습니다.

 

 

고려시대의 사회 구조는 상당 부분 고려왕조의 통치 체제와 관련되어 있었습니다.

귀족층과 양반층이 주요한 지배층이었으며, 평민과 노비는 그들의 지배와 통제 아래에서 살았습니다.

이러한 사회적 구조는 고려의 정치와 경제, 문화를 규정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다음 포스팅에서는 고려시대의 문화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